나는 어렸을 때 부터 듣는 것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고, 고민상담을 해 줄때도 조언보다는 그냥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아니면 나름대로의 나의 경험을 말해주거나. 거기서 파생되는 의식의 흐름으로 대화를 하거나.
방금 강신주 철학자의 어떤 강의를 봤는데 거기에서 그런 얘기가 있었다. '나는 폭력과 순결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한다.' 사람은 인체를 가진 존재인 이상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선하지 않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라는 얘기. 동의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많이 찔리는 이야기였다. 그 찔림은 보통의 찔림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집은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없는 집안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눈길과 손길은 나로하여금 사랑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 부터 깨닫게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도 무심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그들에게 참견하지 않았다. 당신 나름대로의 사정과 사연과 지키고싶은 비밀이 있을텐데 그걸 우리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는 것 처럼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친구들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난 너한테 참견안할테니 너도 날 내버려둬'라고 무언의 메세지를 풍겼다는게 더 맞겠다. 그리고 그게 진심이기도 했고. 친구에게 응원은 해주고 싶고 해줄수 있지만 거기까지가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어짜피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니까.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꽤나 성숙한 철학적 깨달음을 삶으로써 체화했던 것 같다. 나에겐 그저 내가 살기위한 방편이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면 나의 상처에서 나온 방어기제이기도 했고. 그래서였는지 나는 나의 '과도한 배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살갑게 대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늘 항상 주변사람들과 거리감이 있는 듯 했다. 그 거리감은 내 성격상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없애고 싶은, 왜냐면 나의 상처에 대한 반동이니까 이게 없어져야 나는 완전해질 것 같았으니까, 딜레마가 되었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서 막말도 해보고, 깐죽도 거려보고(이건 어느정도 나의 기본 성향인듯싶지만ㅋ), 잘 얘기하지 않던 사적인 이야기들도 꺼내려고 노력했다. 특히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그 거리감을 좁혀야한다는 생각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나는 친밀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느만큼의 거리감이 친밀하다는 것인지 몰랐던 것 같다. 지금도 헷갈린다. 어디까지 나를 보여주고 어느만큼 다가가야 하는건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자연스러운 만큼 하면 되는 건데 허둥지둥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내 사랑은 폭력이 됬다.
봉사활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봉사활동을 할 때도 내내 봉사를 받는 수혜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됬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 쉽지 않은일이다. 자신의 무능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걸 누군가에게 고백해야 하는 일이다. 거기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어려움을 누군가 불쑥 찾아와 들추어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봉사활동과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회의와 의문점들이 생겨났는데, 지금 여기에 그 사연들을 다 쓰기엔 벅차고, 결국엔 다른사람을 돕기전에 내 삶부터 살피자. 다른이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나부터 변화하자. 하고서 돌아왔다. (그렇게 비장하게 돌아와놓고는 지금은 요모냥이다.) 근데 돌아와서는 묘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 자신에 대한 낭패감과 좌절감이었다. 어쨋든 1년반을 계획했었고, 아빠한테 손까지 벌려서 나갔었고, 아프리카에 갈 거라고 그랬었는데 4개월만에 포기하고 돌아온거니까. 그리고 나 조차도 정리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할 수도 없었고. 이 모험중에 남자친구도 잃었고. 아무리 힘들고 회의감이 들었어도 아프리카에 가서 현지사정을 내 눈으로 보고 왔어야했는데 하는 자책감. 나는 실패자였다. 그러네. 내가 보았던 빛들이 다 꺼져버렸다.
갑자기 미국에 있었을 때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하도 기묘해서 선명하게 기억난다. 꿈에서 나는 친구랑 잔디밭에 앉아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짙은 푸른색의 밤하늘 가득 별이 가득했다. 정말 가아득했다.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옆의 친구한테 "와!!! 저것 좀 봐바! 별 진짜 많다!" 라고 말하자마자 별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알고보니 하늘을 가득 메운 것들은 별이 아니라 미사일이었던 거였다. 그 반전에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저 앞부터 미사일이 떨어지면서 우리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 죽는구나.. 생각보다 마음의 준비가 빨리 됐다. 워낙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라 그런가. 주변이 펑펑터지고 죽어가면서도 무섭지 않았다. 다만 '남자친구한테 인사도 못하고 죽네..가람아 사랑해'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평화롭게 죽었다. 그냥 폭발에 휘발되듯이. 그 다음날 길에서 굉장히 신기한 인연을 만나게 됐는데.. 이것도 말하자면 길다. 아무튼 지나고보니 그 꿈이, 내 무의식이 말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알 것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것 일줄 알았던 나의 꿈과 사랑이 사실은 못나고 폭력적이고 그리고 나를(자아를?) 죽일거라는 것. 그 신기한 인연의 아저씨가 해석해 준 바로는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내가 죽기까지 했으니, 굉장한 변화를 암시하는 것 같다고 했었다.
쓰면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네.. 내가 돌아와서 그렇게 의욕이 없고 텅 비어 있었던 것은, 꿈도 사랑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었구나. 당연한거였구나.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우선순위를 정했고 그걸 따라서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완전한 실패다. 게다가 변명할 의지도 마음도 못찾겠다. 그래도 힘내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썼었구나. 좀 더 가라앉아 있어도 괜찬다고 토닥여본다. 다만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자고 다독여본다.
이번 여정에서 내가 실수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었다. 나를 내려놓지 못했고 상대방을 보지 못했다. 엄마한테 비롯된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다는 집착이었다. 이제야 인정한다. 엄마 덕분에 내가 성숙할 수 있었음을. 트라우마가 아니라 선물이었음을. 사랑이 폭력일 수 있다는 어쩌면 어려운 진리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 선물을 엄마가 줬다는 이유로 거부하려 했던 것이 실수였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직도 어린아이다. 모르겠다. 나는 너무 일찍 늙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역시 나는 아직 어리다.
요즘 듣는 것이 어렵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어려움 없이 잘 되던 것이 요즘에는 힘들다. 정말 힘들다. 듣다보면 기가 빨리고, 내 안에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고, 이런 이야기들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속으로 딴 생각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그러고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내뱉는다. 그것도 힘들다. 얘기안해도 힘들고, 얘기해도 힘들다. 얘기하면 친구한테 동감보다는 충고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자책감에 힘들고, 얘기 안하면 그 친구의 투정들과 고민들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것들을 내가 동의하는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걸 흡수하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요즘에는 그냥 내가 너무 힘들어서 되도록이면 내 의견을 그냥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연락을 안한다. 피하게된다.
것봐, 나는 아직 어리지.
아무튼, 내가 가진 선물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봉사활동에 대한 생각도 이제는 죄의식보다는 하나의 시선으로써 정리해봐야겠다.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서 그게 가장 기본이 되는 거잖아?
봉사활동은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하고.
사랑을 주는 일.
사랑을 사랑으로 줄 수 있는 방법.
아니, 사랑으로 만나는 것.
봉사라는 말도 안썼으면 좋겠다.
어떤 명칭을 갔다붙이는 것 자체가 그 행위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봉사자와 수혜자를 나누는 것 자체가 아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