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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흘러가는 듯이 살아왔나, 하는 불암감에 어떤 의지나 방향성을 명확하게 가지고 싶었나보다.
친구에게 타로카드를 봤는데 거짓말처럼 going with the flow 가 나왔다.
어제 낮에 둘이서 바다를 보면서 이 전의 글에 썼던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는 뭘 그렇게 넘어서고 바로잡고 싶었던거지.
adhd 약을 먹어서라도 해보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진정으로 끌리지 않는 것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좋아하는 걸 찾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나?
생각해보면 지금 살고 있는 삶도 그런 셈이다.
나는 규칙이 너무 빡빡한 곳이나 내 마음 깊이 동의하지 않는 어떤 행위를 해야하는 공간이나 환경에서는 긴장하고 실수가 많아진다.
아무리 잘 해보려고 해도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허용적인 분위기, 마음을 써서 할 수 있는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거리감과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잘 기능?한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약을 먹어가며 수행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나에게 편안한 환경과 사람들을 찾아 흘러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꽤 만족스럽다.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특히 요즘 사회처럼 초연결 사회에서는 더,
무언가 주변의 영향에도 무소의 뿔처럼 단단하게 헤처나가고 싶었다보다.
문수처럼.
나는 문수와 같지 않다.
물을 깊은 곳으로 흐른다. 높은 곳으로 가지않아. 낮은 곳, 깊은 곳으로..
물길을 따라서..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다고 물장구를 쳤었나보다.
약을 먹어서라도 다리힘을 올리고 싶었나보다. 운동으로 힘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춤을 추면 즐겁다. 바리나모를 만나서 좋다.
몇년동안이나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복도 있었다.
이미 충분히 잘 가고 있었네..
실언니에게 가게 운영 제의도 받았다.
빛살선생님이랑 넓게 잇기도 함께하고 있다.
오멸 감독님의 영상 수업도 듣고 있다.
멋진 사람들 곁에서 뒷처리? 혹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나의 빛은 언제 빛날지 불안했나보네.
내꺼해야되는데 뭐하고 있나 그런 마음.
내꺼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막연하게..
나의 빛은 태도로 빛난다. 사랑이 흐를 때, 작은 것을 소중히 대할 때,
진심이 흐를 때,
선물하는 마음.
선물하는 마음으로 사랑이 흐르게,
다가오는 날들을 기꺼이 두발로 걸어야지.
오랜만에 티스토리에 글을 쓴다.
네이버 블로그에 종종 글을 써오긴 했지만 그 곳은 아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이어서 여기처럼 벌거벗은 듯이 아주 솔직하게 쓰지는 않는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글을 쓸 때가 있다.
세계여행을 하고, 해외봉사를 한다며 ngo단체에 들었다갔다가 때려치고,
모든걸 내려놓고 제주에 와서 문수를 만나,
적당히 일하고 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에게 유해한 사람은 되지말자라는 마음으로
한량처럼 살고있는 지금.
과거의 경험들을 그저 흘려보내며 살아와서 일까.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다음 순간들을 맞이하는데 급급하게 살았던 걸까.
그치만 삶은 계속 흘러가는 걸.
멈춰도 시간은 흘러가잖아.
나는 뭘 말하고 싶은걸까.
여럼풋하게 산발적으로 어른거리는 이미지들.
혼란.
방향을 잃은 느낌.
그게 괜찮다는 안온감이 필요하다.
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공을 들여 편집하고, 수정하고, 만들어낼까.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풍경은 바뀌는데..
무엇을 붙잡으려고... 지나가고 마는 이 시간들에 무게를 주려는 걸까.
너무 가벼워서.
참을 수 없이 가벼워서.
나는 지금을 말해야할까.
내가 지나온 그 모든 길들은 나에게 내제되어 있을까.
그걸 믿고 지금을 살면 되는 걸까.
오늘의 한 순간.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까.
태도, 오락가락하지만 마주해보는,
집에 있으면 자꾸만 화가난다.
엄마는 왜 자꾸만 예전 이야기를 눈치없게 물어보는걸까.
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묵직해진다.
이번엔 참지않고 그만 좀 물어보라고 감정을 실어 내보냈다.
그래도 조금은 틈이 벌어졌다.
내안의 감정들, 일어나는 것들에 조금은 솔직해졌다.
일어나고 사라진다.
일어나고 사라진다.
어느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일 뿐이다.
내안의 화가 이렇게나 많이 쌓여있었구나.
이 곳에서 나간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되면 또 일어날거야.
쌀쌀맞고 신경질적인 내 모습이 싫다.
이 모습을 문수에게 보이기 싫다.
내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게 싫고, 이런 내 모습을 이끌어내는 엄마 아빠 우리집 분위기가 싫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이또한 지나가겠지만, 허, 지나간다고 해서 그게 뭐 어쨋다는 거란 말이냐.
위선.
밖에 나가 착한 아이인 척. 순하고 어리숙한 가면을 쓰고서는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안전지대에서야 날것이 되는.
지금 나의 최선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모르겠다. 뭘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결심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
검다.
언어의 한계.
이런 감각.
공
공허
그 자체로 있음인 공
홀로 아무도 없어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세상이 보아주지 않아도
빛을 따라 묵묵히 자라나는 새싹처럼
여러 계절을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맞닿는 가지가 있을거야.
뿌리에 다른이의 감촉이 느껴질거야.
홀로 서 있지만
바람에 따라 흘러오는 누군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거야.
나의 낙옆이 누군가의 영양분이 되기를
외로운 가지에 온기가 느껴지기를
봄이오면 잎사귀들끼리 만날 수 있기를
그대는 나의 버팀목이 아니다.
비틀거려도 괜찮아.
우리는 서로 비틀거리며 하늘의 온기를 향해 뻗어가는 중인거야.
휘청거리며 서로 안아주는거야.
하늘을 보는 걸 멈추지말아.
우리는 이미 뿌리내렸으니 계절이 지나 무성해지면 마땅히 만날테야.
흔들리는 그대의 그림자가 내게 용기를 주니.
서둘러 엉키지 말자.
흔들흔들 묵묵한 춤으로
산들산들 편안한 숨으로
이곳에 있을게
자라고 있을게
쓴다.
아침에 일어나 뒤적거리다 문수 목소리를 듣고 웃으며 일어났다.
여유부리다 아침 미사에 늦었다. 장소도 몰라서 헤메다 끝무렵에나 도착했는데. 뭐랄까 경건하고 소소한 분위기에 끼어들 수 없어 뻘줌한 채로 한켠에 서 있다가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며 금방 돌아섰다.
삼거리식당에서 밥을 먹고. 무화과도 얻어먹고. 염치로 삼천원을 내고 나왔다.
동네 구경에 나섰다. 무작정 걸었다.
강정은 생각보다 큰 동네였다.
차도를 따라 걷다보니 강정천이 나왔다.
문득 달빛서림이 생각이 나서 가보고 싶어졌다.
강정 어딘가에 있을터였다.
찾아보니 숙소에서 멀지않은 곳이었다.
달빛서림은 2층에 있었다. 막상 앞에 가니 망설여졌다.
철저한 외부인으로, 아직은 여행자로 떠돌고 싶은 마음이었다. 키미를 만나면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그럼 타시 이야길 하게 될 것이고, 강정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엮이게 될 것이다.
방금 모기를 죽였다. 어제 밤에도 밤새 모기에 시달렸다. 얼굴만 대여섯방을 물리고 앵앵거리는 소리에 새벽에 잠도 설쳤다. 근데 모기를 죽일 때 망설여진다. 가문 날을 버텨서 겨우 내린 비에 이제야 나온 아이들일텐데. 피를 빨아먹어야하는 것이 이들 잘못은 아닐텐데. 쓸데없는 동정심이 올라온다. 예전 같았으면 그 측은지심에 피 빨리고 말았을텐데. 오늘 밤도 설칠지 모른다는 짜증이 앞선다. 미안해. 라고 말하면서 결국엔 죽이고 만다. 모기는 어쩌다 피를 먹게 되었을까. 모기에게 물리는 것은 나에겐 생사를 다투는 일은 아니다. 다만 간지럽고 귀찮고 짜증스러울 뿐이다. 아 티트리를 바르고 자야겠다. 티트리 향기를 싫어하겠지. 싫어했으면... 내 안엔 어쩔땐 모기에게 관대하고 어쩔땐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이중성이 있다. 변덕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행위자체로는 변덕이지만 상황과 맥락 속에서는 자연스런 흐름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않는 신념을 가지는 이들은 대단하다 여겨지고 존경을 받는다. 나는 어떠한 생명도 해치지 않겠어. 라고 맹세할 수 있을까. 융통성없는 신념이란 꼰대의 본질은 아닐까. 난 꼰대가 되기는 싫은데. 상황을 핑계로 대며 자기합리화에 빠지는 것도 싫다. 행위자체보다 태도. 목소리는 목소리 자체로 이야기한다. 소리의 질감이 소리의 의미를 압도하듯이. 신의 목소리가 신의 말씀보다 먼저이듯이. 태도의 문제.
또 추상적인 문제에 빠져든다.
다시
끝없이 흘러가는 구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
영원한 순간을 기록하기
기록하지 않아도 반복될
낯선 반복을 위해 절대로 달관하지 않기
흘러가는 구름은 두번의 같은 구름이 없듯이
최초이자 마지막 마주침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순간
붙잡고 싶은 순간이여
영원할 순간이여
영원이고 싶은 순간으로
이 생을 다시 한번
몸도 피곤하고 내일을 위해 응당 잠에 들어야하는데
잠들지 않고 있다.
저녁에 풀과 천연발효한 빵으로 건강한 식사를 배불리먹고
집에와서 또 마늘빵을 주섬주섬 먹는다.
배가 부른데도 집어 넣는다.
먹고 싶어서 인지 허전해서 인지.
아무튼 그냥 집어넣고 싶다.
커피도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따듯한 물을 마시고 내일 아침으로 미루던 일을 마무리했다.
이닦는건 정말 귀찮지만 더이상은 한심하고 싶지 않아서 이를 닦고 자리에 눕는다.
해피가 베게에 올라와 엉덩이를 내 목덜미에 앉은채로 잔다.
따듯해.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이 글을 치고 있는 소리도 들린다.
더 이상은 쓸말이 없다.
이제니 시인처럼 멋들어지게 늘어놓고도 싶지만.
나는 아마도 요즘 너무 가벼워진 듯 하다.
무중력의 감각으로 허공을 떠다니던 꿈이 생각난다.
오늘은 무슨 꿈을 꾸려나.
내일은 사무실에 간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듣는 것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고, 고민상담을 해 줄때도 조언보다는 그냥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편이었다. 아니면 나름대로의 나의 경험을 말해주거나. 거기서 파생되는 의식의 흐름으로 대화를 하거나.
방금 강신주 철학자의 어떤 강의를 봤는데 거기에서 그런 얘기가 있었다. '나는 폭력과 순결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한다.' 사람은 인체를 가진 존재인 이상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는 선하지 않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라는 얘기. 동의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많이 찔리는 이야기였다. 그 찔림은 보통의 찔림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집은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없는 집안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눈길과 손길은 나로하여금 사랑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 부터 깨닫게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도 무심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그들에게 참견하지 않았다. 당신 나름대로의 사정과 사연과 지키고싶은 비밀이 있을텐데 그걸 우리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는 것 처럼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면 내가 친구들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난 너한테 참견안할테니 너도 날 내버려둬'라고 무언의 메세지를 풍겼다는게 더 맞겠다. 그리고 그게 진심이기도 했고. 친구에게 응원은 해주고 싶고 해줄수 있지만 거기까지가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어짜피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니까.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꽤나 성숙한 철학적 깨달음을 삶으로써 체화했던 것 같다. 나에겐 그저 내가 살기위한 방편이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면 나의 상처에서 나온 방어기제이기도 했고. 그래서였는지 나는 나의 '과도한 배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살갑게 대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늘 항상 주변사람들과 거리감이 있는 듯 했다. 그 거리감은 내 성격상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없애고 싶은, 왜냐면 나의 상처에 대한 반동이니까 이게 없어져야 나는 완전해질 것 같았으니까, 딜레마가 되었다. 그래서 친구를 따라서 막말도 해보고, 깐죽도 거려보고(이건 어느정도 나의 기본 성향인듯싶지만ㅋ), 잘 얘기하지 않던 사적인 이야기들도 꺼내려고 노력했다. 특히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그 거리감을 좁혀야한다는 생각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나는 친밀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느만큼의 거리감이 친밀하다는 것인지 몰랐던 것 같다. 지금도 헷갈린다. 어디까지 나를 보여주고 어느만큼 다가가야 하는건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자연스러운 만큼 하면 되는 건데 허둥지둥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내 사랑은 폭력이 됬다.
봉사활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봉사활동을 할 때도 내내 봉사를 받는 수혜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됬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 쉽지 않은일이다. 자신의 무능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걸 누군가에게 고백해야 하는 일이다. 거기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어려움을 누군가 불쑥 찾아와 들추어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봉사활동과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회의와 의문점들이 생겨났는데, 지금 여기에 그 사연들을 다 쓰기엔 벅차고, 결국엔 다른사람을 돕기전에 내 삶부터 살피자. 다른이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나부터 변화하자. 하고서 돌아왔다. (그렇게 비장하게 돌아와놓고는 지금은 요모냥이다.) 근데 돌아와서는 묘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 자신에 대한 낭패감과 좌절감이었다. 어쨋든 1년반을 계획했었고, 아빠한테 손까지 벌려서 나갔었고, 아프리카에 갈 거라고 그랬었는데 4개월만에 포기하고 돌아온거니까. 그리고 나 조차도 정리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할 수도 없었고. 이 모험중에 남자친구도 잃었고. 아무리 힘들고 회의감이 들었어도 아프리카에 가서 현지사정을 내 눈으로 보고 왔어야했는데 하는 자책감. 나는 실패자였다. 그러네. 내가 보았던 빛들이 다 꺼져버렸다.
갑자기 미국에 있었을 때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하도 기묘해서 선명하게 기억난다. 꿈에서 나는 친구랑 잔디밭에 앉아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짙은 푸른색의 밤하늘 가득 별이 가득했다. 정말 가아득했다.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옆의 친구한테 "와!!! 저것 좀 봐바! 별 진짜 많다!" 라고 말하자마자 별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알고보니 하늘을 가득 메운 것들은 별이 아니라 미사일이었던 거였다. 그 반전에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저 앞부터 미사일이 떨어지면서 우리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 죽는구나.. 생각보다 마음의 준비가 빨리 됐다. 워낙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라 그런가. 주변이 펑펑터지고 죽어가면서도 무섭지 않았다. 다만 '남자친구한테 인사도 못하고 죽네..가람아 사랑해'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평화롭게 죽었다. 그냥 폭발에 휘발되듯이. 그 다음날 길에서 굉장히 신기한 인연을 만나게 됐는데.. 이것도 말하자면 길다. 아무튼 지나고보니 그 꿈이, 내 무의식이 말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알 것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것 일줄 알았던 나의 꿈과 사랑이 사실은 못나고 폭력적이고 그리고 나를(자아를?) 죽일거라는 것. 그 신기한 인연의 아저씨가 해석해 준 바로는 주변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내가 죽기까지 했으니, 굉장한 변화를 암시하는 것 같다고 했었다.
쓰면서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네.. 내가 돌아와서 그렇게 의욕이 없고 텅 비어 있었던 것은, 꿈도 사랑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었구나. 당연한거였구나.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우선순위를 정했고 그걸 따라서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완전한 실패다. 게다가 변명할 의지도 마음도 못찾겠다. 그래도 힘내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썼었구나. 좀 더 가라앉아 있어도 괜찬다고 토닥여본다. 다만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자고 다독여본다.
이번 여정에서 내가 실수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었다. 나를 내려놓지 못했고 상대방을 보지 못했다. 엄마한테 비롯된 트라우마를 지우고 싶다는 집착이었다. 이제야 인정한다. 엄마 덕분에 내가 성숙할 수 있었음을. 트라우마가 아니라 선물이었음을. 사랑이 폭력일 수 있다는 어쩌면 어려운 진리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 선물을 엄마가 줬다는 이유로 거부하려 했던 것이 실수였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직도 어린아이다. 모르겠다. 나는 너무 일찍 늙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역시 나는 아직 어리다.
요즘 듣는 것이 어렵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어려움 없이 잘 되던 것이 요즘에는 힘들다. 정말 힘들다. 듣다보면 기가 빨리고, 내 안에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고, 이런 이야기들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속으로 딴 생각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그러고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내뱉는다. 그것도 힘들다. 얘기안해도 힘들고, 얘기해도 힘들다. 얘기하면 친구한테 동감보다는 충고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자책감에 힘들고, 얘기 안하면 그 친구의 투정들과 고민들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것들을 내가 동의하는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걸 흡수하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요즘에는 그냥 내가 너무 힘들어서 되도록이면 내 의견을 그냥 말하는 편이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연락을 안한다. 피하게된다.
것봐, 나는 아직 어리지.
아무튼, 내가 가진 선물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봉사활동에 대한 생각도 이제는 죄의식보다는 하나의 시선으로써 정리해봐야겠다.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서 그게 가장 기본이 되는 거잖아?
봉사활동은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하고.
사랑을 주는 일.
사랑을 사랑으로 줄 수 있는 방법.
아니, 사랑으로 만나는 것.
봉사라는 말도 안썼으면 좋겠다.
어떤 명칭을 갔다붙이는 것 자체가 그 행위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봉사자와 수혜자를 나누는 것 자체가 아파.